만족할 줄 알면 즐거울 수 있고, 탐욕에 힘쓰면 근심이 됩니다. 지족과 탐욕의 차이를 통해 마음의 평안을 다시 읽어봅니다.

사람은 더 나은 삶을 바랍니다.
조금 더 갖고 싶고, 조금 더 인정받고 싶고, 조금 더 편안해지고 싶어 합니다.
그 바람 자체가 잘못은 아닙니다.
문제는 바람이 끝없이 커져, 지금 가진 것의 의미를 모두 지워 버릴 때입니다.
이 구절은 만족할 줄 아는 마음(知足)과 탐욕에 힘쓰는 마음(務貪)을 나란히 놓습니다. 하나는 즐거움(樂)으로 이어지고, 다른 하나는 근심(憂)으로 이어집니다.
목차
- 원문과 독음
- 이 구절이 말하려는 것
- 한문 문법과 구조로 읽기
- 이 구절이 남긴 유산
- 장면으로 읽는 현실
- Re:Read 노트
1. 원문과 독음
원문
景行錄云,
知足可樂,
務貪則憂.
독음
경행록운,
지족가락,
무탐즉우.
풀이
『경행록』에 말하였다.
만족할 줄 알면 즐거울 수 있고,
탐욕에 힘쓰면 곧 근심이 된다.
2. 이 구절이 말하려는 것
이 구절은 아무것도 바라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또 가난을 무조건 참고, 현실의 불편을 모두 받아들이라는 말도 아닙니다.
원문이 말하는 것은 욕망의 방향입니다.
사람은 무엇인가를 원하며 살아갑니다. 더 나은 삶을 바라는 마음, 필요한 것을 갖추려는 마음, 가족을 위해 애쓰는 마음은 삶을 움직이는 힘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마음이 끝없는 탐욕(貪)으로 바뀌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탐욕은 필요한 것을 구하는 마음이 아니라, 이미 가진 것의 의미를 지워 버리고 아직 갖지 못한 것만 바라보게 만드는 마음입니다.
만족을 알면 마음이 머물 곳이 생기고,
탐욕을 좇으면 마음이 쉴 곳을 잃습니다.
앞부분의 知足可樂은 “만족할 줄 알면 즐거울 수 있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만족(足)은 모든 것이 충분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지금 가진 것의 한계를 알면서도, 그것이 전부 무의미한 것은 아니라고 받아들이는 태도에 가깝습니다.
반대로 務貪則憂는 “탐욕에 힘쓰면 곧 근심이 된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탐욕에 힘쓴다(務貪)는 말은 욕심이 단순히 스쳐 가는 상태가 아니라, 삶의 방향이 욕심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는 뜻입니다.
만족을 아는 사람은 가진 것 안에서 즐거움을 찾고,
탐욕에 힘쓰는 사람은 가진 것 안에서도 근심을 키웁니다.
3. 한문 문법과 구조로 읽기
이 구절은 짧지만 대비 구조가 분명합니다.
知足(만족을 알다) → 可樂(즐거울 수 있다)
務貪(탐욕에 힘쓰다) → 則憂(곧 근심이 된다)
먼저 知足은 “만족을 알다”라는 뜻입니다.
知는 알다, 足은 넉넉함·만족함을 뜻합니다.
知足 → 만족할 줄 알다
可樂 → 즐거울 수 있다
따라서 知足可樂은 “만족할 줄 알면 즐거울 수 있다”로 읽습니다.
뒤 문장의 務貪은 “탐욕에 힘쓰다”라는 뜻입니다.
務는 힘쓰다, 애쓰다의 뜻이고, 貪은 탐욕·탐내는 마음입니다.
務貪 → 탐욕에 힘쓰다
則憂 → 곧 근심이 된다
여기서 則은 “곧”, “그러면”의 뜻입니다.
앞의 상태가 뒤의 결과로 이어진다는 표시입니다.
이 구절의 구조를 한 줄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知足(만족을 앎) → 樂(즐거움)
務貪(탐욕에 힘씀) → 憂(근심)
즉 이 문장은 가진 것의 양보다 마음이 향하는 방향을 보여 줍니다.
만족을 알면 즐거움으로 가고, 탐욕에 힘쓰면 근심으로 갑니다.
4. 이 구절이 남긴 유산
이 구절은 안분편의 첫머리에 놓이기에 알맞은 문장입니다.
안분(安分)은 자기 분수를 편안히 여긴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분수는 사람을 낮은 자리에 묶어 두는 말이 아니라, 자기 삶의 자리와 한계를 아는 태도에 가깝습니다.
만족할 줄 아는 마음(知足)은 삶을 멈추게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마음을 덜 흔들리게 합니다. 지금 가진 것을 모두 하찮게 여기지 않기 때문에, 더 나아가려는 노력도 조급함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탐욕에 힘쓰는 마음(務貪)은 끝이 없습니다.
하나를 얻으면 다음 것이 보이고, 다음 것을 얻으면 또 다른 부족함이 보입니다. 그래서 탐욕은 성취를 낳기도 전에 먼저 근심(憂)을 키웁니다.
삶의 즐거움은 더 많이 갖는 데서만 오지 않고,
지금 가진 것을 알아보는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스토아 철학자 세네카는 『도덕 서한』에서 가난한 사람은 가진 것이 적은 사람이 아니라 더 많이 갈망하는 사람이라는 취지로 말했습니다. 이 구절의 지족(知足)도 가진 양보다 마음의 방향을 더 중요하게 봅니다.
이 구절이 남긴 유산은 단순한 욕심 버리기가 아닙니다.
더 나아가려는 마음을 잃지 않으면서도, 지금 가진 것의 의미를 지우지 않는 태도입니다.
※ 세네카(Seneca) ― 고대 로마 스토아 철학자. 『도덕 서한』 등에서 욕망, 절제, 마음의 평정에 대해 자주 논했습니다.
5. 장면으로 읽는 현실
책과 영화에는 더 많이 가지려는 욕망이 오히려 삶을 근심으로 몰아가는 장면이 자주 나옵니다.
중요한 것은 무언가를 바라는 마음 자체가 아니라, 그 바람이 삶 전체를 삼켜 버리는 방식입니다.
찰스 디킨스 〈크리스마스 캐럴〉
스크루지는 많은 것을 갖고 있지만, 마음은 가난합니다. 돈은 있으나 즐거움(樂)이 없고, 계산은 많으나 따뜻한 관계가 없습니다. 이 작품은 많이 가진다고 해서 반드시 만족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 줍니다.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
개츠비는 부와 화려함을 쌓아 올리지만, 그 욕망은 끝내 평안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원하는 것을 향한 집착이 커질수록 삶은 더 불안정해집니다. 탐욕에 힘쓰면 근심이 된다는 務貪則憂의 흐름을 장면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명심보감의 이 구절은 바로 그 차이를 봅니다.
만족(知足)은 마음이 머무는 자리이고, 탐욕(貪)은 마음이 끝없이 밀려나는 자리입니다.
6. Re:Read 노트
이 구절은 짧지만 오래 남습니다.
만족을 알면 즐겁고,
탐욕에 힘쓰면 근심이 된다.
너무 단순해서 오히려 쉽게 지나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살아 보면 이 말은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우리는 가진 것보다 없는 것을 더 크게 봅니다.
이미 이룬 것보다 아직 못 이룬 것을 더 자주 떠올립니다.
그러다 보면 삶은 계속 부족한 쪽으로 기울어집니다.
물론 만족은 멈춤이 아닙니다.
더 나아가려는 마음까지 버리라는 뜻도 아닙니다.
다만 나아가려는 마음이 탐욕이 되지 않으려면, 지금 가진 것의 의미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만족을 아는 마음은 즐거움을 만들고,
탐욕에 붙들린 마음은 근심을 키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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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 reviewed by @Pencilgon | AI-assisted with ChatGPT & Google Gemini | Images created with Canva & Google Gemi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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